무장친위대전사록

바쁘고 지친 가운데서도 틈틈이 이책과 함께 했던 여름도 가고 조석으로 선선한 가을을 느끼지만 한낮은 아직 무더운 편이다보니 조금 움직인다 싶으면 온통 땀으로 뒤덮이는 나날들의 연속. 항상 대중적으로 인기없는 군사서에 관심이 있다 보니 늘 해외 저자들의 번역판을 접해왔던 터라 순수 국내 저자의 저서를 접하며 놀라움과 신기함(?)마저 들었다. 다 알다시피 이런 도서는 경제성이 거의 없는 편이며 대체로 출판사들이 꺼리는 장르임에도 많은 양은 아니어도 꾸준하게 이런 책을 펴내는 도서출판 길찾기에서 나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순수 저자든, 번역자든 이런 유의 책은 아예 경제성은 포기하고 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일전에 만슈타인의 「잃어버린 승리」라는 책을 번역한 역자가 출판사의 외면에 자비로 출판했는데 상당한 적자를 감수했다는 후문에서 보듯이 비상한 열정이나 집념이 아니면 군사물을 낸다는 것은 아직은 무모한 현실에 가까워 보인다. 출판사 역시도 비슷한 상황일 터.

아무튼 이런 어려운 시기에 이런 흥미로운 책을 낸 저자와 출판사가 고마울 따름이다. 특히 독일 무장친위대(WAFFEN SS)와 관련된 책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고 보면 관심자로서 반가운 일이다. 무장친위대 전사록이란 제목만으론 2차대전 시기 무장친위대의 전체 전투사인가 싶었는데 실은 동부전선의 일정시기에 한한 소련군과의 전투를 무장친위대 위주로 다루고 있다. 1943년 1월에서 7월까지 즉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쿠르스크 전투까지의 라이프슈탄다르테, 다스라이히 그리고 토텐코프의 3개 무장친위대 사단의 혈전록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으며 더욱이 1차 사료까지 섭렵한 저자의 식견에 신뢰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싶고 내용 속에 관련 사진들은 삽입해 이해를 돕다 있다.

또한 쿠르스크 전투를 날짜별로 무장친위대 각 사단과 독일 육군의 상황을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오래된 역사임에도 현장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저자가 축구팬인지 어떤 상황은 축구경기에 빗대서 표현한 부분들이 더러 있으나 감칠맛이 들 정도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괜찮아 보였다. 스스로 동부전선의 전모는 물론 히틀러의 개인 경호부대로 출발했던 친위대가 최고의 전투 엘리트 집단으로 발전해 전장에서 활약했던 점 등에 대해 부족했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많은 부분 흥미로운 것은 분명하며, 국내 저자의 저서를 통해 독소전의 한 전환점을 그것도 전선의 최선봉에서 싸웠던 무장SS사단들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 아닌가 싶다. 아울러 무장친위대의 쿠르스크 이후의 전투들도 다룬 책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다음은 책 속의 내용 일부

p-602
통상적인 역사서의 소련군이 쿠르스크전에서 독일군의 기동전력을 밀어내고 전쟁의 두 번째 전환점을 이루어 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별 국면의 전투에서는 소련군에 대한 독일군의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확인할 수 있는데, 1943년이 다 갈 때까지, 그리고 1944년이 되어서도 독일군은 8:1, 10:1의 양적 열세 속에서 8:1, 10:1의 기적적인 상호 전차 격파비율을 유지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월 12일은 독일군의 실제적인 대 소련군 전과의 결과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적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충격적 사기를 과시한 날이기도 했다. 쿠르스크의 신화는 독소 양군이 1,500대의 물량을 프로호로프카에 쏟아 부어 사상 최대의 전차전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화가 아니라, 그와 같은 개별전투에서 독일군이 창출해낸 거짓말 같은 황홀한 전투기록이 전정한 신화로 기록되어야할 것이다.

p-676
대부분의 전투는 중대나 대대급 규모로 전개된 것이 태반이며 한방에 사단이나 군단이 서로 격돌하여 승패를 겨룬 단위 전투는 7월 12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가장 드라마틱했다고 상상되었던 프로호로프카 전차전도 막상 들여다보면 독일 전차 몇 대가 마치 투우사의 솔로 액션으로 수백대의 소련 소떼들을 물리친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따라서 1,500대 전차의 대격돌 신화는 지나친 과장이라는 점이 발굴되어 더 이상의 신화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일부 독일군의 기적적인 전투기량만은 가히 신화적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이 문제의 전투, 성채작전 중 단일 단위의 독소 양군 최대의 격돌에서 독일군이 전술적 승리를 쟁취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기고도 거기서 작전이 중단되고야 마는, 만슈타인이 말한「 잃어버린 승리」가 되었던 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의 신화로 남게 될 것이다.

p-677
전투계속을 희망했던 만슈타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성채작전은 7월 13일 공식적으로 중단되었으며 뒤이은 롤란트 작전도 불임으로 종료되었다. 전후에 각종 자료들의 집적에 근거해 종합한 바에 따르면 독일은 이미 도저히 승리를 쟁취할 수 없는 대규모의 소모전을 시작함에 따라 사실상 7월 5일 전투 개시 이전에 승패는 이미 결정 나 있었던 것으로 보는 시각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거시적으로 보아 쿠르스크 기갑전은 소련군의 무제한 물량공세와 끝도 없는 전략적 예비병력의 존재로 인해 결국 질이 양을 이기지 못한다는 속성을 경험적으로 증명해 준데 지나지 않았다.

p-682
무장친위대의 명성은 제3차 하르코프전을 통해 확고한 위상을 획득했다. 이전에는 육군 집단군의 예하부대로 존재하다 1943년 2월에 처음으로 3개 SS장갑척탄병사단이 하나의 전투집단으로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흔히 축구에서 말하는「쓰리 톱」의 역할을 훌륭히 감당해 냈다. 쿠르스크전에서는 제2SS장갑군단의 이름으로 남부전선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냈으며 가장 피비린내 나고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단위작전들을 감수하면서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1943년)7월 5일 소련군의 1,2차 저지선을 통과하거나 거의 근접한 사단은 모두 SS들이었다.

p-684
정통 군사교리를 받아들인 국방군, 육군이 강한가, SS들이 강한가에 대해서는 마니아 수준에서도 자주 논의되는 화두이나 최소한 성채작전의 경우를 두고 보면 SS들의 전과가 월등히 뛰어남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SS사단들은 하르코프에 이어 쿠르스크에서도 기존 육군과 맞먹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질적으로 우월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의 초인적인 결과들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광신적인 전투의욕과 인종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SS부대의 지휘관들은 상식 이하의 중과부적인 상태에서도 후퇴하지 않고 자살에 가까운 돌격과 저항정신을 보여주었으며, 그러한 정신적 무장 상태가 출중한 전투 테크닉으로 뒷받침되었던 만큼, 기존의 육군들이 올린 무공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전과들이 창출되었다.

p-685
쿠르스크에서 이들이 보여준 믿지 못할 전과는 2차 세계대전 전체를 통 털어서도 가장 경악할 만한 인상들을 창출해 냈다. 늘 SS와 대립각을 세워 왔던 국방군 장성들도 하르코프와 쿠르스크를 통해 무장친위대들의 능력과 기술을 인정치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방군보다 더 프로적인 잠재력을 무한대로 발휘한 것이 1943년 봄과 여름의 러시아 전역이었다. 특히 성채작전이 종료된 7월 중순부터 미우스 전선, 제4차 흐르코프 전투, 드니에프르 유역 전투에서 SS사단(다스라이히, 토텐코프, 뷔킹)들은 12:1의 병력 열세를 딛고도 8:1, 10:1의 압도적인 상호격파비율을 유지하그서 소련군 기동전력에 무자비한 소나기 펀치를 날렸다. 오히려 지뢰가 별로 없던 이 구역에서 무장친위대의 기동 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공을 발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전술적, 작전술적 우위는 더 이상 전략적 어드밴티지를 가져올 수는 없었다.

p-689
소련은 1943년 한 해 쿠르스크전이 완전히 끝날 무렵까지 총 19~20,000대의 전차를 상실한 것으로 집계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이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독일은 100대만 상실해도 비틀거리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쿠르스크전 또는 독소전의 승패는 전장이 아니라 이미 전차를 만드는 공장에서 결정이 났다는 사실은 결코 레토릭이 아니다.

p-693
쿠르스크전은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마지막으로 취한 전략적 공세였다. 성채작전의 중단과 그 이후에 이어지는 소련군의 드니에프르 진격 및 우크라이나 해방은 독일군에게 있어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 것과 같았다. 소련군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더 이상 자신의 영토를 빼앗기는 일은 없었다. 독일군은 전략적 수세로 돌아섰다. 소련군은 처음으로 하계 공세에서도 독일군을 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독일군은 소련군들이 더 이상 군복을 걸친 농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서쪽으로 퇴각의 길에 올랐다. 독일군은 전쟁의 끝이 모스크바 정면에서 결정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이제 쿠르스크에서의 좌절은 전투와 전쟁의 끝이 베를린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까지는 그 후로도 2년 가까이 되는 기간을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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